말씀 묵상/QT

보내시는 주님, 보냄받는 제자

김익제 2026. 3. 4. 02:02

누가복음 9:1-6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향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1. 하늘의 권위로 보내심을 받다.

누가복음 9:1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십니다. 그리고 곧바로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는 9:2에서 내보내십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제자들이 먼저 나서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보내신 것입니다. 파송의 주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십니다.

 

여기서 '능력'으로 번역된 헬라어 δύναμις (뒤나미스)는 초자연적인 힘을, '권위'로 번역된 ἐξουσία(엑수시아)는 위임된 통치권을 가리킵니다. 제자들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것입니다. 보냄을 '받는다'는 말은 바로 이 뜻입니다.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내시는 분의 능력과 권위에 기반한 택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같은 구조를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20:21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보내신 것 같이 보낸다'는 말은, 파송의 원형이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있다는 뜻입니다. 제자의 파송은 이 관계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보냄을 받은 분이셨고, 그 보냄의 권위를 제자들에게 이어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증인이 되는 것은 인간적 결심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에서 시작됩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직접 능력과 권위를 주신 것이,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을 통해 계속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보내심은 동일한 패턴을 따릅니다. 예레미야가 자신의 어림을 이유로 주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7-8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내가 보내든지'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보냄받는 자의 자격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어리든, 부족하든, 보내시는 분의 권위가 보냄받는 자를 세워주십니다. 누가복음 9장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직 완전히 준비된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위가 그들을 세웠습니다.

 

2. 택하심에도 불구하고 힘쓰는 자.

누가복음 9:3-5에서 예수님께서는 파송에 앞서 구체적인 지침을 주십니다. 지팡이, 배낭, 양식, 돈, 여벌 옷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내시는 분에 대한 전적인 의존을 몸으로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제자는 택함을 받았지만, 택함을 받은 후에도 훈련받아야 합니다.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제자의 본질은 택하심에 있습니다. 그러나 택하심이 준비를 면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더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디모데후서 2:15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힘쓰라'(σπούδασον)는 열심을 다해 노력하라는 강한 명령형입니다. '인정된 자'(δόκιμον)는 시험을 거쳐 검증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일꾼이 되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훈련,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같은 서신에서 바울은 그릇의 비유를 통해 같은 원리를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2:21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이라는 조건절이 있습니다.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는 데에는 자기 정결의 과정이 따릅니다. 택하심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지만, 그 택하심에 합당하게 자신을 준비하는 것은 제자의 몫입니다.

빌립보서는 이 긴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빌립보서 2:12-13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2절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명령합니다. 인간의 노력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13절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합니다. 소원을 두시는 분도, 행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택하심과 힘씀이 모순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의 제자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나간 것은, 바로 이 의존과 순종의 훈련이었습니다.

 

베드로도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베드로후서 1:5-7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더욱 힘써'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믿음 위에 덕을, 덕 위에 지식을, 그 위에 절제를 쌓아가는 것은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택하심을 받은 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택하심 위에 성품을 쌓아가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세부 지침을 주신 것도, 이 훈련의 시작점이었습니다.

 

3.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로.

누가복음 9:6은 이 파송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라는 표현에는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움직임이 담겨 있습니다. 제자들은 흩어졌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파송의 본래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흩어져야 합니다. 우리끼리 모여 은혜를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은혜는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순환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지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신 곳은 이미 복음을 아는 공동체가 아니라, '각 마을',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가 흩어진 장면은 이 원리의 가장 분명한 예시입니다.

사도행전 8:1,4
"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핍박으로 흩어진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복음은 예루살렘 밖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의 표현은 누가복음 9:6의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와 거의 동일한 구조입니다. 누가는 의도적으로 이 연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위임령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가서'(πορευθέντες)는 '가면서', 즉 삶의 자리에서 움직이며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선교지만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모든 자리가 보냄받은 자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을'이라는 표현은, 복음이 특정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흩어짐의 논리를 연쇄 질문으로 풀어냅니다.

로마서 10:14-15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누가복음 9장의 논리를 역순으로 보여줍니다. 보내심을 받아야 전파하고, 전파해야 듣고, 들어야 믿습니다. 흩어지지 않으면 전파가 일어나지 않고, 전파가 없으면 믿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각 마을로' 보내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묵상을 마치며

누가복음 9:1-6은 파송의 세 가지 결을 보여줍니다.

 

보냄은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주님의 권위에서 시작됩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는 그 택하심에 합당하게 준비하고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된 자는 결국 흩어져야 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들끼리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보냄받은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