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QT

맹인 김익제

김익제 2026. 2. 14. 02:04

누가복음 6:39-42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없다. 맹인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는 존재인데, 그러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이끈다는 것은 이끄는 사람과 이끌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위험한 것이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선장을 따르는 선원들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낭만이 있는 것이지, 실제로 죽고 사는 현실에서 내가 탄 배의 선장이 그러하다면 상당히 끔찍할 것 같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통해 질문을 하신 이유는, 스스로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주시기 위함이셨다. 네가 맹인인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라는 것이었다. 
 
이건 꼭 신앙에서만 설명 가능한 진리는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이끈다는 그 역할에 심취해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있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떄는 미안했다 애들아.)
 
예수 그리스도의 직속 제자가 영적인 눈이 어두워 그와 그의 제자를 따르는 사람들을 빛이 아닌 어둠으로 이끈다면 이끄는 사람과 이끌림 받는 사람이 모두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경고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허물을 말씀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깨닫는 것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웃지 못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으... 아프겠는데...

 
근데 이게 쉽나? 그렇지 않다. 스스로를 찬양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정반대로 자기를 말씀 앞에 적나라하게 스스로 고발하는 행위는 어찌 보면 미련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자기 성찰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눈의 들보를 뺐으면, 그다음 차례는 형제의 눈 속의 티인 것이다. 
 
"와! 내 눈의 들보가 빠졌어!" 하고 땡이 아니라, 주위 타인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삶의 가치관으로 삼아 살아내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좁은 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이 본인에게 좀 더 많이 집중했으면 좋겠는 마음에 "익제야, 오지랖 부리지 말고 너나 잘해라."라고 늘 말씀하시지만 (아빠 저도 노력 중이에요.), 마르지 않는 사랑을 경험한 나로서는, 본능을 넘어선 초월적 영역에서 다이렉트로 내려오는 명령을 거스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착하다는 오해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진짜 부끄럽다. 나 원래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맹인 김익제, 눈 속에서 들보를 빼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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