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QT

의심하는 신앙은 틀린 신앙이 아니다

김익제 2026. 2. 19. 01:04

누가복음 7:18-23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감옥에 있었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정말로 "오실 그이"이신지 궁금했었고, 제자들 중 둘을 불러 직접 예수님께 여쭤보도록  보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둘에게 당신께서 행하신 기적과 복음이 전파됨을 말씀하시며 세례 요한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신다. 

 

잠시 내 얘기를 하겠다.

 

나는 모태 신앙인으로서, 태어나기를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 없이 오히려 애정을 가지며 살았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 넘어가는 그 시점에 신앙적 사춘기가 왔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지, 예수님이라는 분은 누구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었다. 

 

이러한 의문을 시작으로 한국 교회를 바라봤을 때, 너무 역겨웠다. 

 

타락한 목사들과 기복 신앙으로 무장한 성도들을 보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중 가장 역겨웠던 것은 나 자신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전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거울을 보기 싫었던 적도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가장 정확한 증거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내가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다면, 내가 왜 죄를 계속 짓는 거지?"

 

"내가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다면,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거지?"

 

생각하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했다. 

 

지금 돌이켜봤을 때, 이 신앙적 사춘기를 거치면서 가장 잘한 것은 이러한 질문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라는 형태로 직접 드린 것이다. 

 

성경을 펼쳐 읽어 내려가면서 직접 생각해 본 것이다. 

 

많은 성도들은 맹목적인 신앙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위와 같은 의문을 품게 되면 스스로를 책망한다.

"OO는 믿음이 강한데, 나는 너무 믿음이 없어."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안심해라. 의심하는 신앙은 틀린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도 예수님이 정말로 "오실 그이"이신지에 대해 의심을 품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다. 논리적으로, 단계적으로, 구체적으로 사고하며 문제 해결의 근본이 되는 귀한 특성이다.

 

그리고 이성으로 하나님 당신을 알 수 있게 해주셨다.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는 성도들이 있는가? 그러면 직접 그에게 질문해보라. 

 

그러면 답해주실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질문이 오기를 기대하며 기다리시고 계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존재를 알리시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고 해서 기분이 상하실 것을 염려하지 말아라. 우리 주님은 그렇게 째째하신 분이 아니시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를 보면 더욱 생생히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악인으로 가득 찬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위해 의인을 함께 심판하시는 것을 막기 위해 설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인은 단 한 명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주장을 계속 들으시며 그의 뜻대로 하기로 선택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시다. 

 

인간이 신의 논리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1D 세상이 2D나 3D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논리 영역을 초월한 신의 논리로 아브라함을 단번에 조용히 시키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그런 방법을 택하기보다는, 당신과 생각이 다른 영혼이 있다면 언제든지 흔쾌히 나와서 당신과 변론하기를 원하셨다.

 

"김익제, 네가 나랑 생각이 달라? 오케이. 너 나와서 나랑 얘기 좀 해."하시는 것이다.

 

당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해코지를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든지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추천한다. 

 

오히려 이렇게 나름의 투쟁을 통해 얻은 신앙은 우직한 소나무처럼 쉽사리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는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보자. 

 

요한은 예수님을 의심했고 예수님께서는 전할 말씀을 전하라 명하시며 복에 대해 선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실족하지 말고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발견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