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11-17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에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자기의 처지를 온전히 아는 사람은 스스로가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아주 잘 안다. 말 그대로 마음이 가난한 상태인 것이다.
이건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불가항력의 불행인 것이다.
돈이 많고, 학벌이 좋고, 하늘보다 높은 권력에 있거나, 외모가 뛰어나다고 해서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적인 기준에서 이미 모든 사람들이 선망할 만큼 높은 위치에 있는데도 정신과를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너무나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준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돈이 좋고(사랑하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윤택한 삶을 위해 충분히 많은 돈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학벌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연구와 공부를 하고 있으며,
외모를 가꾸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라고 외칠 수 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과부는 여기에 한 술 더떴다.
이미 남편이 없는 여자인 과부인데, 아들까지 죽었다.
시대상을 고려해 보면 이 여자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이다.
호흡에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목이 찢어져라 눈물을 흘리며 울어도 죽은 남편과 아들은 돌아오지 못하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우는 것 외에는 없었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와 많은 무리들을 동행하며 그 과부에게 직접 찾아가신다.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직접 의도를 가지고 찾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13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고, 14-15절을 거쳐 생명의 주이신 그분께서 아들을 과부에게 돌려주신다.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긍휼과 위로가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과부가 받은 기적과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의사가 병든 자에게 나 필요하지 멀쩡한 사람들에게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스스로 아프더라도 "나는 아프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프지 않더라도 "나는 아픕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 입장에서 병든 자는 후자이다.
의사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다 알아서, 말하지 않아도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내가 아픕니다. 나를 고쳐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고백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 삶이 만족스러운데?"
"지금처럼만 살면 좋을 것 같은데?"
진심으로 다행이고, 나는 앞으로도 당신의 삶에 긍정적인 코멘트만 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은 날이 오거든 낙심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길 바란다.
그 분만이 유일한 길, 생명 그리고 진리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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