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QT

자기에게도 필요했을 그것을

김익제 2026. 4. 1. 01:55

마가복음 14:3-9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 스스로도 부족한 자가 드릴 때

사람은 자기 삶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를 돕거나 무언가를 내어줄 때 설명하기 어려운 기쁨을 느낍니다. 자기에게 부족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단순한 심리 현상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안에 반영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14장의 이 여인은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립니다. 삼백 데나리온 이상, 노동자의 거의 1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은 이 여인의 경제적 형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백 데나리온이라는 금액은 누구에게든 가볍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본문 어디에도 이 여인이 망설이거나 아까워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옥합을 '깨뜨렸다'는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다시 담아둘 여지조차 남기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의 헌신을 전하면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증언합니다.

고린도후서 8:2-3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극심한 가난'과 '풍성한 연보'는 상식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둘이 함께 일어났다고 증언합니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가난한 그 자리에서 넘치는 기쁨이 연보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더 주목할 것은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라는 표현입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구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마게도냐 교회들이 연보를 드리기 전에 먼저 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주께 드린 것'입니다. 물질을 드리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드렸습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도, 옥합을 깨뜨리기 전에 이미 자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부족한 자가 드릴 수 있는 것은, 그 드림의 근거가 자기 넉넉함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녀에게도 필요했을 것

본문은 이 여인이 부유했는지, 가난했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 이상의 향유는 그녀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재산이었을 수도 있고, 미래를 위해 남겨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이 침묵하고 있기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잃어도 괜찮은 것'을 드린 것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화를 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4-5절을 보면, 그들은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 향유의 가치를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알기에 '허비'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같은 장면을 전혀 다르게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좋은 일'(6절)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금액을 보았고, 예수님은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에서도 예수님은 같은 눈으로 보십니다.

 

마가복음 12:43-44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풍족한 중에서 넣은 것'과 '가난한 중에서 넣은 것'은 금액이 같더라도 질적으로 다릅니다.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그녀의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자기에게도 필요한 것을 드린 것입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자기에게도 필요했을 그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고린도후서 8: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있는 대로 받으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있는 것을 드리는 마음을 기꺼이 받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헌신의 기준은 금액의 크기가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마음을 다해 드리는 것, 그것을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그리고 이 원리의 궁극적인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부요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부요함 자체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여인이 옥합을 깨뜨린 것은, 이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 앞에서 나온 응답이었습니다.

 

3. 힘을 다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예수님이 이 여인에 대해 하신 평가의 핵심은 8절에 있습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여기서 '힘을 다하여'라는 표현과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는 의미가 겹칩니다. 예수님이 보신 것은 향유의 가격이 아니라, 이 여인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9절의 선언은 성경 전체에서도 매우 특별합니다.

마가복음 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지금 우리가 이 본문을 읽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이름도 기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는 복음과 함께 기억되게 하셨습니다. 이름이 아니라 행위가, 지위가 아니라 마음이 기억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원리를 더 넓은 맥락에서 확인해줍니다.

 

히브리서 6: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불의하지 아니하사'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우리의 헌신을 기억하시는 것이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주의 이름을 위해 드린 사랑과 섬김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잊어도, 기록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즐겨 내는 자'의 헬라어 원어(ἱλαρόν, 힐라론)는 '기꺼이, 밝은 마음으로'라는 뜻입니다. 헌신의 크기가 아니라 헌신의 마음을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 이것이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도, 두 렙돈을 넣은 과부에게도, 마게도냐 교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충성된 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향유를 부은 여인이 칭찬받은 것도 삼백 데나리온이라는 값어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힘을 다해 했다는 것, 그것이 주님 앞에서 충성이 되었습니다.

 

묵상을 마치며

이 여인은 이름도, 직분도, 경제적 형편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기록된 것은 하나입니다. 자기에게도 필요했을 그것을 주님께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힘을 다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넉넉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자리에서 마음을 다해 드리는 것, 그것을 주님은 보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내가 가진 것이 적다고 해서, 드릴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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