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QT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앞에서

김익제 2026. 3. 31. 01:02

마가복음 11:12-19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1. 잎사귀는 열매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서 나오시던 길에 시장하셨습니다. 멀리서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지만, 막상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에 대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14절)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잎사귀는 무성했다는 사실입니다. 멀리서 보기에 그 나무는 충분히 건강해 보였습니다. 잎이 있으니 열매도 있을 것이라 기대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신즉, 겉모습과 실제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습니다. 잎사귀는 열매가 아닙니다.

이 장면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비유로 읽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6,20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증입니다. 예배에 출석하는 것, 성경을 읽는 것, 기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열매는 아닙니다. 그것들은 잎사귀에 해당합니다. 열매는 그 안에서 실제로 변화된 삶, 성품,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열매를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단수입니다. 헬라어 원어(καρπός, 카르포스)가 단수형으로 쓰였다는 것은, 이 아홉 가지가 각각 별개의 덕목이 아니라 하나의 열매가 여러 방면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뜻합니다. 이 열매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맺으시는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열매가 맺히려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이것을 더 날카롭게 말합니다.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행함이 없는 믿음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열매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무에 가까이 가셨듯이, 주님은 우리에게도 가까이 오셔서 열매를 찾으십니다.

 

2. 본래의 자리를 회복하라

무화과나무 사건 바로 뒤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마가는 이 두 사건을 의도적으로 나란히 배치합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성전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며 인용하신 말씀은 이사야 56:7과 예레미야 7:11입니다.

 

마가복음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매매와 환전의 장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은 여전히 존재했고, 제사 의식도 계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는 자리는 상실된 상태였습니다. 잎사귀는 무성했지만 열매가 없었던 무화과나무와 정확히 같은 상태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신앙에도 적용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깨끗하게 하신다'는 표현의 헬라어 원어(καθαίρω, 카타이로)는 '가지치기 하다', '정리하다'라는 뜻입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더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깨끗하게 하시는 과정을 거치십니다. 성전 정화는 바로 이 가지치기의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에서 본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 것, 곧 기도와 예배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른 것들에 의해 밀려나 있을 때, 그것을 회복시키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 활동의 양이 아닙니다. 그분 앞에 나아오는 진실한 마음,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본래 기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상을 엎으신 것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이었습니다.

 

 

3. 심겨진 씨앗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썼습니다.

고린도전서 3:6-7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궤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다는 진리가 우리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같은 원리를 빌립보 교회에 더 구체적으로 적용합니다.

빌립보서 2:12-13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두 절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12절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우리의 책임입니다. 13절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 둘은 모순이 아니라, 동시에 작동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지만, 우리는 그 소원에 응답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 곧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명령형입니다. 심겨진 씨앗을 소중히 지키는 것, 주님 안에 머무는 것, 말씀을 붙드는 것, 기도를 놓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일이고 우리의 기도제목입니다.

 

요한복음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열매를 맺는 것,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직결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자의 표지입니다.

 

묵상을 마치며

무화과나무는 잎사귀가 부족해서 저주받은 것이 아닙니다.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건물이 부족해서 정화된 것이 아닙니다.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열매를 원하시고, 그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다만,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듯이, 우리 안에 심겨진 씨앗을 소중히 지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이자 신분증이며, 그 열매를 향한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잎사귀만 무성한 자리에 머물지 않기를, 오늘 주님 앞에 열매로 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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