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QT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드셨다

김익제 2026. 3. 29. 00:43

누가복음 11:37-41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1. 잔과 대접의 겉 — 바리새인의 정결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식사를 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잡수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자, 그 바리새인은 '이상히 여기는지라'(38절)고 본문은 기록합니다. 여기서 '손 씻음'은 위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시 유대인의 정결 예식, 곧 '네틸라트 야다임'(נטילת ידים)이라 불리는 의례적 손 씻기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이 예식은 율법 준수의 가시적 표지였습니다. 손을 씻지 않는다는 것은 곧 부정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바리새인의 시선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식탁 위의 잔과 대접을 비유로 드시며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39절). 마태복음의 병행 본문은 이 장면을 더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잔의 겉을 아무리 닦아도 안에 더러운 것이 남아 있으면 그 잔은 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바리새인의 신앙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드러내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의례와 규범은 철저하게 지키면서, 마음속의 탐욕(ἁρπαγή, 하르파게)과 악독(πονηρία, 포네리아)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하르파게는 '강탈'이나 '약탈'이라는 뜻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탐심을 가리킵니다. 포네리아는 도덕적 부패와 악의를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내면에 이 두 가지가 가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2.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드셨다

4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아"라고 부르십니다. 헬라어 '아프로네스'(ἄφρονες)는 단순한 지적 부족이 아니라, 분별력의 부재를 뜻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이 질문은 수사적 질문이지만, 그 안에 깊은 신학적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겉과 속을 모두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의 정결에만 집중했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겉과 속 모두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7b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손을 씻었는지, 안식일을 지켰는지, 십일조를 드렸는지, 예배에 출석했는지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 모든 행위 아래에 있는 마음의 상태를 보십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았기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편 51: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라는 고백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경건의 형식이 아니라, 중심에 있는 진실함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놓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잠언 기자도 같은 원리를 전합니다.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표현은 마음이 삶의 모든 방향을 결정하는 출발점임을 알려줍니다. 겉을 아무리 정결하게 해도,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탐욕과 악독이라면 그 삶은 정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잔과 대접의 비유를 드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겉과 속을 분리하여 겉만 다루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것입니다.

 

3.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4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책망에 머물지 않으시고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이 말씀의 의미는 단순히 '가진 것을 나누어라'는 윤리적 교훈 이상입니다.

 

'그 안에 있는 것으로'(τὰ ἐνόντα)는 '안에 있는 것들을'이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의 안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했습니다(39절). 예수님께서는 그 '안에 있는 것'을 구제, 곧 자선의 행위로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행위 변화의 요구가 아닙니다. 마음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탐욕으로 움켜쥐는 손을 자선으로 내미는 손으로 바꾸라는 것, 악독으로 가득한 속을 긍휼과 나눔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병행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같은 원리를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마태복음 23:26
"눈 먼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순서가 중요합니다. 겉에서 안으로가 아니라, 안에서 겉으로입니다. 안이 깨끗해지면 겉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러나 안이 그대로인 채 겉만 닦는 것은 외식(ὑπόκρισις, 휘포크리시스), 곧 연기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이 진리를 깨달은 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편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창조하시고'(בְּרָא, 바라)라는 히브리어 동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1:1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용된 것과 같은 동사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더러운 마음을 스스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한 마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마치며

바리새인은 잔의 겉을 닦고, 손을 씻고, 율법의 조문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겉이 아니라 속을 보셨습니다. 겉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속도 만드셨기에, 하나님 앞에 겉과 속이 분리된 신앙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의례적 정결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탐욕을 내려놓고 구제하는 삶, 악독 대신 긍휼을 품는 삶, 그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깨끗해지는' 길입니다.

 

지금 내 잔의 겉은 깨끗합니까. 그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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