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QT

사랑 없는 율법의 무게

김익제 2026. 3. 29. 01:07

누가복음 11:42-48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1. 율법은 죄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율법이 가진 본래의 역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치 거울이 얼굴의 더러움을 보여 주듯, 율법은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같은 맥락에서 더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로마서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의로운 것입니다. 율법이 없었다면 바울은 자신 안에 있는 탐심조차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 율법의 역할을 한 가지 비유로 요약합니다.

 

갈라디아서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초등교사'(παιδαγωγός, 파이다고고스)입니다. 이 단어는 당시 헬라 사회에서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보호자를 가리켰

습니다. 율법의 목적지는 율법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율법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의로울 수 없음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의 은혜 앞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입니다.

 

2. 짐을 지우고 손가락도 대지 않는 자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좋은 율법을 왜곡한 자들을 향해 강하게 경고하십니다. 4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린다'고 지적하십니다. 여기서 '공의'(κρίσις, 크리시스)는 올바른 판단, 정의로운 행위를 뜻하고, '사랑'(ἀγάπη, 아가페)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적 사랑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세밀한 조항은 철저히 지키면서, 정작 율법이 가리키는 핵심인 공의와 사랑은 내버렸습니다.

 

45절에서 한 율법교사가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라고 반응하자, 예수님께서는 화살을 율법교사들에게로 돌리십니다.

46절의 말씀은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마태복음의 병행 본문은 이 장면을 더 구체적으로 전합니다.

 

마태복음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율법교사들은 율법의 세부 규정들을 복잡하게 해석하고 부가적인 전통을 덧붙여, 백성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그 짐을 함께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율법의 무게를 나누지 않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핵심입니다.

 

47-4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위선의 뿌리가 더 깊다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어 경건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의 행위를 승인하는 자들입니다. 겉으로는 종교적 헌신을 보여주면서, 안으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거부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런 태도와 정반대되는 길을 제시합니다.

 

갈라디아서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율법교사들은 짐을 지우고 손가락도 대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법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3.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궁극적으로 가리키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42절로 돌아가면, 예수님께서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 자체를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행위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 곧 공의와 사랑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온 율법의 요약이 사랑입니다. 율법의 세부 조항을 아무리 철저히 지킨다 해도, 그것이 사랑에 뿌리를 두지 않으면, 그 행위는 목적지를 잃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이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고린도전서 13:1-2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방언도, 예언도, 지식도,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율법의 지식에서는 누구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었습니다. 사랑 없이 율법을 다루었기에, 율법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묵상을 마치며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경고는 2천 년 전 바리새인들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알면서도 사랑 없이 그 말씀을 다루는 모든 자리에 이 경고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율법은 죄를 비추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귀한 것이지만, 사랑 없이 휘두르면 사람을 짓누르는 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공의와 사랑이 함께하는 삶이며,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율법은 소리 나는 구리와 같고, 사랑 안에 있는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