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1-4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1.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구한 제자들
본문은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신 뒤에 시작됩니다. 제자 중 하나가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여짜옵니다. 이 장면에서 주목할 것은, 제자들이 기도의 '방법'을 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자신들의 기도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예수님의 기도 장면을 자주 기록합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눅 3:21), 열두 제자를 부르시기 전 밤(눅 6:12), 변화산에서(눅 9:28-29), 그리고 이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먼저 기도하시는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제자들은 가르침을 듣기 전에,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먼저 보았습니다. 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 기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마태복음의 병행 본문에서 예수님은 기도에 앞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중언부언'으로 번역된 헬라어 '바탈로게오(βατταλογέω)'는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다'는 뜻입니다. 이방인들은 말의 양이 기도의 효력을 결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의 본질이 말의 분량에 있지 않다고 가르치십니다. 이어지는 8절은 그 이유를 밝혀줍니다.
마태복음 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구하기 전에 아신다'는 이 말씀은, 기도가 하나님께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님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그 답을 보여줍니다. 기도는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것, 그분의 뜻을 구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필요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중언부언이 아니라, 아버지를 향한 신뢰 위에서 드리는 간결하고 진실한 고백입니다.
2.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를 먼저 구하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아버지여'라는 호칭으로 시작됩니다. 누가복음의 기도는 마태복음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보다 더 짧고 직접적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호칭은 '파테르(Πάτερ)'이며, 이것은 아람어 '아빠(אַבָּא)'에 대응하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이 호칭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아빠'는 유대 가정에서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친밀한 호칭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치십니다. 이것은 기도의 자격이 우리의 공로에 있지 않고, 아들 삼아 주신 은혜에 있음을 뜻합니다. 종이 주인에게 보고하듯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아버지께 나아가듯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첫 번째 내용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두 번째 내용은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순서는 분명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 그 다음 하나님의 나라, 그 후에 우리의 필요입니다.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순서는 단순한 기도의 형식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내 필요가 급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구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방향입니다.
3. 죄 사함이 필요한 우리
3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십니다. '날마다'라는 표현과 '일용할'이라는 표현은 모두 오늘 하루에 필요한 것을 가리킵니다. 헬라어 '에피우시온(ἐπιούσιον)'은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등장하는 독특한 단어로, '그날에 필요한 만큼의'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넘치는 양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앞서 8절에서 확인한 것처럼, 구하기 전에 이미 아시는 아버지를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양식의 기도에 이어 곧바로 죄 사함의 기도를 가르치십니다. 4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입니다. 여기서 '죄'로 번역된 헬라어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는 '과녁을 빗나감'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각주에 따르면, '죄 지은'에 해당하는 원어는 '빚진(ὀφείλοντι)'이라는 표현입니다. 죄는 하나님 앞에 진 빚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기도 안에 죄 사함을 포함시키신 것은, 이것이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식이 몸의 일용할 필요라면,
죄 사함은 영혼의 일용할 필요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미쁘시고 의로우사'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의 변덕이나 기분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에 근거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죄 사함의 근거를 더 분명히 밝힙니다.
에베소서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기도의 마지막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입니다. 죄 사함을 구한 직후에 시험으로부터의 보호를 구합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받은 자가 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아버지의 보호 안에 머물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죄 사함과 시험으로부터의 보호, 이 둘은 하나의 흐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죄 사함은 하나님의 나라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는 이 연결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골로새서 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죄 사함을 얻은 자가 그 나라 안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기도에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를 먼저 구하고, 이어서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를 구하는 순서는 이 진리를 반영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의 나라가 임할 때, 죄 사함을 받은 우리도 그 나라 안에서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묵상을 마치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놀랍도록 짧습니다. 그 안에는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오늘의 양식, 죄의 용서, 시험으로부터의 보호.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아셨고, 그 필요를 어떤 순서로 아버지께 가져가야 하는지를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중언부언이 아닌 간결한 기도가 가능한 것은, 구하기 전에 아시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많은 말이 아니라, 아버지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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