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QT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

김익제 2026. 3. 19. 01:00

누가복음 10:25-30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1. 영생의 비결은 감추어져 있지 않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품는 질문입니다. 영생에 이르는 길이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고,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응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 예수님은 새로운 답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되돌려 보내셨습니다.

 

율법교사의 대답은 정확했습니다. 신명기 6:5의 쉐마와 레위기 19:18의 이웃 사랑 명령, 이 두 본문을 결합한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 전통에서 율법 전체의 요약으로 받아들여지던 내용입니다. 신명기의 원문을 봅니다.

 

신명기 6:4-5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이 명령은 사랑의 범위가 아니라 사랑의 총체성을 말합니다. 내 존재의 어떤 부분도 남겨 두지 않고 하나님께 향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율법교사는 여기에 '목숨'을 더하여 네 가지로 답합니다. 마음, 목숨, 힘, 뜻 — 한 사람의 전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이 대답에 "네 대답이 옳도다"(28절)라고 확인하셨습니다. 답은 이미 거기에 있었습니다. 바울도 같은 사실을 로마서에서 말합니다.

로마서 10:8-9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영생의 길은 감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답을 알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살아내느냐 하는 것, 바로 거기에 이 본문의 긴장이 있습니다.

 

2. 말이 아닌 행동이 믿음을 증명한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의 대답을 확인하신 뒤 한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28절). '행하라'는 말씀이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알라'가 아니라 '이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고, 그 거리가 믿음의 진위를 드러냅니다.

 

율법교사는 답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9절이 보여주는 그의 반응은 의미심장합니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헬라어 원어(δικαιῶσαι ἑαυτόν)는 '자기 자신을 의롭다 하려고'라는 뜻입니다. 그는 답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질문의 범위를 좁히려 했습니다. '이웃'의 경계를 정해 놓고, 그 안에서만 사랑하면 된다고 확인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익숙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그 사랑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상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면서, 삶의 방식은 그 고백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태. 야고보서는 이 괴리를 정면으로 지적합니다.

야고보서 2:17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표현은 강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약한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도 같은 맥락에서 말합니다.

 

요한일서 3:18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말과 혀로만'이라는 표현이 율법교사의 모습과 겹칩니다. 그는 말로는 완벽한 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요구하신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도 이 원리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21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나의 고백과 나의 행동이 다를 때, 진짜는 행동 쪽입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것과 삶으로 그 고백을 살아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진위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 나의 발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3. 사랑의 고백이 걸어갈 때

그렇다면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말씀은, 행위로 영생을 얻으라는 뜻입니까? 여기서 본문을 더 넓은 성경의 맥락 안에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교사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을 완전히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로마서 3:20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것을 스스로 이룰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냅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율법의 역할은 우리를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을 자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 원리를 한 단계 더 밝혀줍니다.

 

갈라디아서 3:24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초등교사'(παιδαγωγός)입니다.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로 인도하는 길잡이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율법교사에게 "이를 행하라"고 하신 것은, 행함으로 영생을 사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네가 정말로 이것을 완전히 행할 수 있느냐'를 스스로 물어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 앞에 정직하게 서면,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로마서 8:3-4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우리가 행할 수 없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계명은 우리의 힘으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고백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고백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걸어 나갑니다. 입술의 고백이 발걸음이 될 때, 비로소 아는 것이 사는 것이 됩니다.

 

묵상을 마치며

율법교사는 답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옳게 보이려는'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명령 앞에 정직하게 설 때,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사랑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영생의 길은 숨겨진 비밀이 아닙니다. 공개되어 있고, 그 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문제는 그 길을 아느냐가 아니라, 그 길 위를 걷고 있느냐입니다.

 

아는 것이 곧 사는 것이 되는 자리, 그곳에 영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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