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17-20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1. 주의 이름이면
칠십 인이 전도 현장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첫 마디는 놀라움이 담긴 고백이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17절). 이 보고에는 기쁨과 함께,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에 대한 경탄이 들어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주의 이름이면'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입니다. 귀신을 제어한 것은 제자들의 능력이 아니라 '주의 이름'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 앞의 못 걷는 사람을 고쳤을 때에도 동일한 고백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3:6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에게는 은도 금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었던 것은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선포되었을 때,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뛰어 일어났습니다. 능력의 근원은 선포하는 자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이름 자체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이름의 위엄에 대해 이렇게 선언합니다.
빌립보서 2:9-11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라는 표현은, 이 이름 아래 놓이지 않는 권세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칠십 인이 경험한 귀신의 항복도, 베드로가 경험한 치유의 기적도, 모두 이 이름의 권위 아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모든 권능의 출처는 오직 하나, 주의 이름입니다.
2. 땅에서 찾을 수 없는 이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보고를 들으신 후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18절). 그리고 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19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내가 주었으니'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권능의 주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은 권능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위임받은' 것입니다.
이 구별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영적 능력이나 놀라운 경험을 했을 때, 그것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유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내 신앙이 깊기 때문에', '내가 영적으로 성숙하기 때문에'라고 생각하는 순간, 시선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유혹 앞에서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사도행전 3:12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무는 것을 즉시 차단합니다. 권능의 원인을 '개인의 경건'에서도 찾지 않았습니다. 한 톨이라도 자기 공로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도 성경은 같은 원리를 말합니다.
에베소서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정리합니다. 구원도, 권능도, 은혜의 열매도, 그 출처는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고린도전서 1:31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땅에서 원인을 찾는 순간, 우리는 권능의 주인이 아니라 권능의 도둑이 됩니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의미를 부여받고, 주님으로부터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므로 시선은 언제나 하늘을 향해야 합니다.
3. 기록된 이름, 압도적인 은혜
예수님은 20절에서 놀라운 전환을 하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권능의 경험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것을 가리키고 계십니다.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보다,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더 큰 기쁨의 근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교가 아닙니다. 본질의 전환입니다. 권능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신 일'에 대한 것이고, 하늘에 기록된 이름은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무리 놀라워도,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신다는 사실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말라기서에는 이 '기록됨'에 대한 구체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말라기 3:16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의 이름을 직접 기록하십니다. 이 기록은 사람의 업적이나 능력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가, 주님의 기억의 책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기록의 영원한 성격을 확인해 줍니다.
요한계시록 21:27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보다, 병을 고치는 은사보다, 그 어떤 영적 체험보다 압도적인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권능은 사역의 도구이지만, 하늘에 기록된 이름은 관계의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 관계의 본질을 증언합니다.
로마서 8:16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하나님의 자녀로 기억되고 기록되는 것. 이것이 모든 권능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권능보다 앞서는 은혜입니다.
묵상을 마치며
칠십 인은 귀신이 항복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기쁨 너머에 있는 더 깊은 기쁨을 가리키셨습니다. 권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능력의 출처를 자기 안에서 찾지 않는 것, 모든 영광을 주의 이름에 돌리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기억되는 존재임을 아는 것.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입니다.
그분의 기억의 책에 기록된 이름, 그것은 어떤 권능보다 압도적인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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