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QT

숨기시고 나타내신 아버지의 뜻

김익제 2026. 3. 18. 03:03

누가복음 10:21-24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1. 세상의 지혜와 성경의 지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십니다. 그 내용은 뜻밖입니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21절).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숨기신 것에 대해 감사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지혜의 개념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세상에서 지혜란 보통 삶의 통찰을 이끌어내는 분석적 능력을 뜻합니다.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파악하며, 더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지혜의 출발점은 이와 다릅니다.

 

잠언 9:10
"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이 말하는 지혜의 '근본'(히브리어 테힐라, תְּחִלָּה)은 '시작' 혹은 '첫째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의 시작이 분석이나 논증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21절에서 예수님께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이라 하신 것은, 바로 이 순서를 뒤집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파악하려 했던 자들, 경외 없이 앎에 도달하려 했던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 역설을 더욱 선명하게 전합니다.

 

고린도전서 1:21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기뻐하셨도다"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절에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아버지께 감사하신 것과, 고린도전서에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이 같은 결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적 능력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자신을 알게 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반대로 "어린 아이들"이란 자기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자들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자들에게 "나타내심"을 기뻐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7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

22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앎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합니다. 아버지를 아는 것은 인간의 탐구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아들의 소원에 따른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여기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라는 표현은, 이 앎이 철저히 은혜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헬라어 '불로마이'(βούλομαι)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숙고된 의지와 결정을 뜻합니다. 곧 아들이 누구에게 아버지를 나타내실지를 주권적으로 결정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이것을 증거합니다.

 

마태복음 16:16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17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은 그의 학식이나 분석력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명확하게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알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22절이 말하는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과정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 계시를 받은 자가 고백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고백이 반드시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이겠습니까. 오히려 성경은 자기 지혜를 내려놓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선 자들이 더욱 아름다운 고백에 이르렀음을 보여 줍니다. 베드로 역시 당시 유대 사회에서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5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3. 보는 눈의 복

2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이어 24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구약의 선지자들과 왕들이 간절히 보고 듣고자 했던 것을, 지금 이 제자들이 보고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이 선지자들의 간절함을 이렇게 전합니다.

베드로전서 1:10-11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선지자들은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증언하시는 바를 연구하고 상고했지만, 그 실체를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 보고자 했던 그 실체가, 지금 제자들 앞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조용히" 이르신 이 말씀에는, 제자들이 얼마나 특별한 자리에 있는지를 일깨워 주시는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는 눈"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예수님의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같은 시대에 살면서도 예수님을 보고 듣고도 거부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21절에서 말씀하신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제자들의 눈이 복된 것은, 단지 시대적 특권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계시를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8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베드로전서의 이 말씀은,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 이후 세대의 성도들에게도 같은 복이 임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보지 못하나 믿는 것, 그것이 곧 아버지께서 나타내신 것을 받아들이는 "어린 아이"의 자세이며, 예수님께서 "복이 있도다"라 하신 그 자리입니다.

 

묵상을 마치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인간의 지적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과 아들의 계시에서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분석하고 증명하여 확신에 이르지만, 성경의 지혜는 경외하고 신뢰하여 고백에 이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고백의 자리를 기뻐하셨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은 긴 논증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한 어부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고백을 향해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 고백이 아름답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분석이 아니라 신뢰에서, 증명이 아니라 경외에서 나오는 고백 —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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