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1-9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 같도다
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 추수할 것은 많되 — 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칠십 명을 세우시기 전에, 먼저 상황을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2절). 마태복음 9장에서 열두 제자를 보내시기 전에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37-38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추수하는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주인이 직접 추수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신 분이, 일흔 명의 연약한 사람 없이도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으십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2:13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소원을 두시는 것도, 행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직접 하실 수 있는 일을, 일꾼을 세워 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의 장면이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4:11-12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을 말했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였습니다. 입을 지으신 분이 말을 가르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세우시는 이유는, 일꾼의 능력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일꾼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 자발적 순종을 원하시는 주님
예수님의 보내심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3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 같도다" 이것은 안전한 파송이 아닙니다. 어린양은 이리 앞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없습니다. 더구나 4절에서는 전대도, 배낭도, 신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인간적인 준비물을 모두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주님께서, 왜 이토록 연약한 조건으로 보내시는 것입니까? 여기에 보내시는 분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효율적인 결과가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응답이 이 원리를 보여줍니다.
이사야 6:8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고 물으셨습니다. 강제로 보내실 수 있으셨지만, 물으셨습니다. 이사야가 "나를 보내소서" 하고 자원했을 때, 그 순종 자체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관계를 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16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는 말씀에서, 보내심의 주체는 철저히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 함'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이지만, 세우시고 보내시는 것은 주님이십니다. 전대도 배낭도 없이 가라 하신 것은, 의지할 곳이 오직 보내신 분뿐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자리를 '사신'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고린도후서 5:20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사신(πρεσβεύομεν)은 자기 말을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낸 이의 말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권위 때문입니다.
3.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사역에 동참하는 기쁨
칠십 명이 들어가는 곳마다 선포해야 할 핵심 메시지가 9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이 선포는 칠십 명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고, 칠십 명은 그것을 전달하는 역할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이 선포를 직접 하시지 않고 사람의 입을 통해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관계를 '동역자'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고린도전서 3:9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하나님의 동역자'(Θεοῦ συνεργοί)라는 표현은 놀랍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이 '함께 일하는 자'로 불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 인간의 기여가 필수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에 우리를 초대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서는 이 초대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에베소서 2:10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가 행할 선한 일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비된 일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5절에서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고 평안을 선포하라 하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평안의 근원은 보내신 하나님께 있고, 칠십 명은 그 평안을 전달하는 통로가 됩니다.
본문의 흐름을 다시 보면, 추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2절), 보내시는 분도 예수님이시며(3절), 선포할 내용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9절).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런데 그 사역 한가운데에 칠십 명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기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29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은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합니다. 동시에 그 수고는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수고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동역의 아름다움입니다.
묵상을 마치며
하나님께서 일꾼을 세우시는 것은 부족하셔서가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대도 배낭도 없이, 어린양처럼 연약한 우리를 보내시면서도, 그 보내심 안에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혼자서도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을 사용하시고, 우리의 입을 사용하시고, 우리의 순종을 기뻐 받으십니다. 이 사역에 초대받았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은혜입니다.
그분의 일에 동참하는 자리, 그 자리가 가장 아름다운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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