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49-56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1. 주님을 위한다는 열심.
오늘 본문에는 두 장면이 나옵니다. 49-50절에서 요한은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그것을 금하였다고 보고합니다. 51-56절에서는 사마리아 마을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자, 야고보와 요한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멸하겠다고 나섭니다.
두 장면의 주체는 다르지만, 이 안에 흐르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한다'는 열심입니다. 요한은 주의 이름이 아무에게나 사용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을 거부한 마을을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런 열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10: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바울이 말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이 경고는 오늘 본문의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열심이 있되, 그 열심이 올바른 지식 — 곧 주님의 마음에 대한 앎 — 을 따르지 않을 때, 그 열심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슬프게 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불을 구한 것은 열왕기하의 엘리야를 떠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왕의 군대를 멸한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1:10-12). 제자들은 이 선례를 따르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하나님의 이름 아래서, 엘리야의 시대에 허락된 것이 예수님의 현장에서는 꾸짖음을 받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이라 해서 모두 주님의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내세우는 열심보다, 그 이름이 품고 있는 마음의 방향을 보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을 슬프게 하는 모습들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이 곧 올바른 방향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열심은 반드시 주님의 마음을 물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2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하나님께 봉사하는 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열심이 방향을 잃으면 그렇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바로 그 출발점에 서 있었습니다.
2. 주님이 꾸짖으신 것.
55절의 기록은 매우 간결합니다.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본문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다만 '꾸짖으시고(ἐπετίμησεν, 에피티메센)' 한 단어만 남아 있습니다. 이 헬라어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으실 때(눅 4:35), 열병을 꾸짖으실 때(눅 4:39), 풍랑을 꾸짖으실 때(눅 8:24) 사용된 같은 단어입니다.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단호하게 멈추시는 행위입니다.
일부 고대 사본에는 55절 뒤에 이런 말씀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이 본문은 개역개정의 본문에는 포함되지 않고 각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승이 담고 있는 의미는, 본문의 맥락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예수님이 꾸짖으신 것은 제자들의 열심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꾸짖으신 것은 그 열심의 방향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멸하려 했고, 예수님은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9:10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3:17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마을이 당신을 거부한 그 순간에도, 그들을 멸하실 뜻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56절). 거부당하셨지만, 보복하지 않으시고, 다음 마을로 가십니다. 이 한 절에 주님의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주님은 거부하는 자를 멸하시는 분이 아니라, 다음 기회를 열어 두시는 분이십니다.
에스겔서에는 하나님의 이 마음이 맹세의 형태로 선언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33:11
"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존재 자체를 걸고 하신 선언입니다.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예수님의 꾸짖음 뒤에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를 멸하려 했지만, 주님은 사마리아가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3. 주님의 마음에 순종하는 사랑.
주님의 이름을 들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이 묻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의 열심은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는가?
주님은 당신의 이름이 드러나시는 것보다 한 영혼이라도 주께 돌아오는 것을 원하십니다.
베드로후서 3:9
"9.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멸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돌아오기를 오래 참으시는 마음입니다.
디모데전서 2:3-4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가 배제하고 싶은 사람, 주님의 이름으로 정죄하고 싶은 사람까지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예언하는 능력, 모든 비밀을 아는 지식, 산을 옮기는 믿음, 몸을 불사르는 헌신 — 이 모든 것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에게는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었고, 불을 구할 만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신 것은 그것이 사랑의 방향 안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신 뒤, 말없이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이 행동 자체가 가르침입니다. 거부당해도 보복하지 않고, 다음 마을에서 다시 복음을 전하시는 것. 이것이 주님의 방식이고, 이것이 주님의 이름이 품고 있는 마음입니다.
요한복음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모든 사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알게 되는 것은, 우리의 정죄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정말 주를 사랑한다면, 이 마음에 순종해야 합니다.
묵상을 마치며
제자들은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사마리아를 향해서는 불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 불을 꾸짖으시고, 말없이 다음 마을로 가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든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행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품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라도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 마음 앞에 우리의 열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 이름에 합당한 사랑이 됩니다.
주님의 이름은, 불을 내리는 권위가 아니라 한 영혼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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