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설교

행복한 교회

김익제 2026. 3. 2. 01:04

사도행전 2:42-47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1. 말씀과 교제 위에 세워진 공동체

사도행전 2장 42절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네 가지로 요약합니다.

 

•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서로 교제하고

• 떡을 떼며

•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 네 가지는 교회가 교회답기 위한 기둥과 같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말씀 앞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체험이 앞서고 감격이 넘치는 순간에도, 그들은 가르침을 받는 자리를 놓지 않았습니다.

 

'힘쓰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카르테로운테스(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는 '꾸준히 전념하다', '지속적으로 매달리다'라는 뜻입니다. 일시적인 열심이 아니라, 계속되는 헌신이었습니다.

 

말씀이 공동체의 토대가 된다는 것은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바입니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기자에게 말씀은 길을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개인에게 그러하다면, 공동체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말씀이라는 공통된 빛 아래 모일 때, 교회는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는 것은, 말씀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임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가 사도의 가르침에 힘썼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로 언급된 것은 '서로 교제하고'입니다. '교제'로 번역된 헬라어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는 단순한 친목이 아닙니다. '공유', '참여', '나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 같은 성령, 같은 주님 안에서 삶을 나누는 것이 코이노니아입니다.

요한일서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이 말하는 사귐, 곧 코이노니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수평적 교제와 수직적 교제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 이 공동체의 본질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이것은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처럼,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행복한 교회일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말씀과 교제라는 토대 위에 함께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나누는 삶, 채워지는 삶

사도행전 2장 44-45절의 장면은 놀랍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이것은 제도적인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나눔이었습니다.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일률적으로 똑같이 분배한 것이 아니라, 필요가 있는 곳에 필요한 만큼 흘러갔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이 모습이 다시 한 번 기록됩니다.

사도행전 4:34-35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라는 구절은, 모두가 부유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궁핍한 사람이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에서 하나님이 그리셨던 공동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15:4-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공동체 안에서는 가난한 자가 없다는 약속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약속이 성령 안에서 실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눔은 단순히 물질의 이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의 표현입니다. 요한은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요한일서 3:17-18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초대교회의 나눔은 이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마게도냐 교회의 나눔을 소개하면서 그 근거를 밝힙니다.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눔의 궁극적 근거는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부요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셨기에,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었습니다. 잠언 기자도 나눔의 역설을 이렇게 말합니다.

 

잠언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나누면 줄어드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누면 채워진다고 말합니다. 초대교회가 행복한 교회일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나눔을 통해 서로가 채워지는 삶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3. 날마다 기뻐하는 교회

사도행전 2장 46-47절은 초대교회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여기서 '날마다'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의 삶이 예배였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라는 표현도 주목해야 합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펠로테티 카르디아스(ἀφελότητι καρδίας)는 '단순함', '꾸밈없음'이라는 뜻입니다. 복잡한 계산이나 숨은 의도 없이, 순수하게 함께하는 기쁨이었습니다.

 

성전에 모이는 것이 기쁨이 된다는 것은, 시편 기자의 고백과 닿아 있습니다.

시편 122: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이 말을 들었을 때 기뻐했다는 것은, 예배가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었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날마다 성전에 모인 것은 규율의 강제가 아니라, 같은 종류의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쁨, 기도, 감사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의 기쁨은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마지막 구절이 주목해야 할 결론입니다. '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의 성장이 전도 전략이나 프로그램의 결과가 아니라, '주께서 더하게 하시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함께 모이는 것 자체의 의미를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함께 모이는 것은 단순한 출석이 아닙니다. 서로를 돌아보고, 격려하고, 사랑과 선행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임이 바로 이런 모임이었기에, 그 공동체를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주께서 친히 구원받는 사람을 더해 가셨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이 공동체의 본질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땅 위에서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행복한 교회의 비밀이었습니다.

 

나누며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는 특별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말씀 위에 서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날마다 기쁨으로 함께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공동체의 행복은 외부 조건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하는 삶 자체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도, 우리가 모인 이 구역도, 같은 말씀 위에 서 있습니다.

 

행복한 교회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말씀 묵상 >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의 피로 화목하게 되는 은혜  (0) 2026.03.31
바울이 쉬지 않고 드린 기도  (0) 2026.03.23
열매를 맺는 복음  (0) 2026.03.16
진실한 일꾼  (1) 2026.03.09
주께 칭찬받는 헌신  (0)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