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3-9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 헌신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의 이 여인은 순수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립니다. 당시 삼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거의 1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어디에도 이 여인이 망설이거나 아까워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옥합을 '깨뜨렸다'는 표현은, 다시 담아둘 여지조차 남기지 않은 전적인 드림을 보여줍니다.
의무감에서 나오는 헌신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즐겨 내는 자'라는 표현의 헬라어 원어(ἱλαρόν [힐라론])는 '기꺼이, 밝은 마음으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헌신은 크기가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시편 기자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시편 40: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이것은 감정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는 삶, 그것이 헌신의 본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리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십자가라는 극심한 고통 앞에서도 '기쁨을 위하여' 참으셨다는 것은, 헌신의 동력이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가 힘들 때, 섬김이 지칠 때, 그 너머에 있는 주님과의 관계가 우리를 붙드는 기쁨이 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이 기쁨을 놓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이라는 단어가 핵심입니다. 환경이 좋을 때만이 아니라, 감옥에서도, 핍박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쁨의 근거가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신의 기쁨도 결국 같은 자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 헌신은 사람의 시선을 넘어섭니다.
여인이 향유를 부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4:4-5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노하여 서로 말하되 무슨 의도로 이 향유를 허비하느냐'고 합니다. '노하여'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비판의 수위가 상당했다는 것입니다.
헌신의 자리에는 거의 언제나 사람의 평가가 따라옵니다. '저건 좀 과하지 않나',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보여주기식 아닌가.' 이런 시선 앞에서 우리의 헌신은 쉽게 흔들립니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에게 '누구를 기쁘게 할 것인가'는 양자택일의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평가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헌신의 방향이 사람을 향해 있으면, 결국 사람의 반응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골로새서는 이 원리를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골로새서 3:23-24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주께 하듯 하고'라는 말은, 헌신의 방향을 정해줍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하는 봉사, 찬양, 기도, 구역 섬김,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수신자가 '주님'이 될 때, 사람의 인정 여부는 부차적인 것이 됩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람의 눈에는 허비로 보였던 향유가, 주님의 눈에는 '좋은 일'(막 14:6)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향해 비판하는 자들에게 '가만 두라 왜 그를 괴롭게 하느냐'고 하시며 직접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도 같은 원리를 가르치십니다.
마태복음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보상의 출처를 어디에 두시겠습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면 사람의 칭찬이 전부가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 드리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3. 주님은 헌신의 마음을 기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 대해 하신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도 매우 특별한 선언입니다.
마가복음 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기억입니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이 본문을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이름도 기록하지 않으셨지만, 그 행위는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원리를 더 넓은 맥락에서 확인해줍니다.
히브리서 6: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불의하지 아니하사'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기억하시는 것은 은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근거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위해 드린 사랑과 섬김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말라기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기념책'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 눈에 띄지 않는 섬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도, 이 모든 것이 기념책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충성된 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라는 말씀은, 헌신의 크기가 아니라 충성됨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위가 칭찬받은 것도 그 값어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는 힘을 다하여'(막 14:8)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는 것, 그것이 주께 칭찬받는 헌신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마감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의 이 고백은 자기 자랑이 아닙니다. 끝까지 달려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담담한 확신입니다. 그리고 이 면류관은 바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집니다.
나누며
이 여인은 이름도, 직분도, 지위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행위를 복음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게 하셨습니다. 주께 칭찬받는 헌신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힘을 다하여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드리는 기도, 섬김, 시간, 마음, 그것이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이든, 주님은 보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오늘 내가 깨뜨릴 수 있는 옥합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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