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설교

십자가의 피로 화목하게 되는 은혜

김익제 2026. 3. 31. 00:53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0)

 

1.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있었던 우리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전에' 어떤 상태였는지를 분명히 상기시킵니다. 21절의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도덕적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단절되어 있었다는 선언입니다. '멀리 떠나'는 거리의 문제이고,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은 방향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같은 현실을 말합니다.

이사야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갈라 놓았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이 그 사이를 갈라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가 아니고, 귀가 둔해서가 아닙니다(사 59:1). 문제는 처음부터 우리 쪽에 있었습니다.

 

로마서는 이 상태를 더 보편적으로 선언합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골로새서 본문의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악한 행실의 원인을 '마음'에서 찾습니다.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이라고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악한 행실의 뿌리에는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마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 상태를 '죽음'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에베소서 2:1, 3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말은, 우리의 본래 상태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화목 이전의 우리 모습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할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렇습니다.

 

2.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화목

본문 20절은 이 화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분명히 말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화목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화목의 수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움직이셨습니다.

 

22절은 이 화목의 방식을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여기서 '그의 육체의 죽음'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육체를 입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관념적인 화해가 아니라, 실제 피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 화목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은혜의 시점을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회개한 후에, 자격을 갖춘 후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그 상태 그대로, 원수 된 그 상태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먼저 죽으셨습니다. 10절은 이것을 더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로마서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골로새서 1:21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이라는 표현과 로마서 5:10의 '원수 되었을 때에'라는 표현이 정확히 겹칩니다. 하나님과 화목할 자격이 없는 자에게,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화목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로 인함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화목의 목적은 22절 후반부에 나옵니다.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화목은 단순히 관계 회복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시는 것, 이것이 화목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이 변화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것입니다.

 

3. 믿음에 거하고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

23절에서 바울은 '만일'이라는 조건절을 사용합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것은 화목의 은혜를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삶의 방향입니다.

 

'믿음에 거하고'라는 말은, 한 번 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 머무르는 삶을 뜻합니다. '터 위에 굳게 서서'라는 표현은 건물의 기초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초가 흔들리면 건물 전체가 흔들립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터는 우리가 들은 복음,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이루신 화목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우리 안에는 다시 악한 행실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21절의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라는 표현이 과거형이지만, 믿음에 거하지 않으면 현재에도 반복될 수 있는 위험입니다. 내가 주님과 멀어진 만큼, 그 빈자리를 악이 채웁니다. 교회에 손님처럼 앉아 있는 것으로는 이 터 위에 굳게 서 있는 것이 되지 않습니다. 예배당에 몸은 있으나 마음은 떠돌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에 거하는' 삶이 아닙니다. 내 신앙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과 화목한 관계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지, 그것이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23절 후반부는 이 믿음의 삶이 개인에게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화목의 은혜를 받은 자는 그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것을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5:18-19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화목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화목의 사신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자의 삶이 곧 선교의 삶이 됩니다. 부르짖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 앞에 나아가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람이 바뀔 수 있습니까. 복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이 복음 안에서의 변화를 이렇게 선언합니다.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과거의 구분, 배경의 차이, 조건의 다름, 이 모든 것을 넘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화목의 복음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나누며

우리는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 화목은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 은혜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화목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과 멀어진 만큼 악과 가까워지고, 주님과 가까운 만큼 그 은혜 안에 머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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