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24-29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7b)
1. 감추어졌던 비밀이 나타났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6-27절에서 하나님의 비밀에 대해 말합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만세와 만대, 곧 오랜 세대에 걸쳐 감추어져 있던 것이 '이제는'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제는'이라는 시간 표현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직접 열어 보이신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도 같은 비밀에 대해 기록합니다.
에베소서 3:5-6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 비밀의 내용은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만의 것으로 여겨졌던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민족에게 열렸다는 선언입니다.
로마서의 송영에서도 바울은 이 비밀을 같은 맥락으로 말합니다.
로마서 16:25-26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그런데 바울은 이 비밀을 교리적 정보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27절 후반부에서 그 핵심을 밝힙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비밀의 내용은 교리가 아니라 인격입니다.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자체가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소망'이 되십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이야말로 이 '영광의 소망'이 헛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기에,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분이시고, 그분이 주시는 소망은 죽음 너머까지 이르는 소망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라는 표현은, 뒤에 반드시 더 많은 열매가 따라온다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만의 사건이 아니라, 그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한 부활의 시작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 비밀을 자신의 삶으로 고백합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골로새서의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같은 고백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의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 이것이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다가 마침내 나타난 비밀이고, 이것이 영광의 소망입니다.
2. 고난 너머의 영광
바울은 24절에서 특이한 고백을 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괴로움을 '기뻐한다'는 표현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표현은 신학적으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불완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바울이 받는 괴로움이 곧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고난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기뻐합니다.
그 이유는 고난 너머에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 관계를 분명히 말합니다.
로마서 8:17-18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표현의 헬라어 원어(ἄξια)는 '무게를 달다, 가치를 매기다'라는 뜻입니다.
현재의 고난을 저울 한쪽에 올려놓고 장차 나타날 영광을 다른 한쪽에 올려놓으면,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만큼 영광의 무게가 크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도 같은 논리가 반복됩니다.
고린도후서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잠시'와 '영원', '경한 것'과 '중한 것'이 대비됩니다.
환난은 잠시이고 가벼우며, 영광은 영원하고 무겁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괴로움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확신 때문입니다.
부활절에 이 본문을 읽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은 바로 이 '고난 너머의 영광'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지나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 부활의 능력과 고난의 관계를 하나로 묶어 말합니다.
빌립보서 3:10-11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에게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고난을 감당할 수 있고, 고난을 통과하기에 부활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로마서 6장은 이 연합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로마서 6:4-5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한 자는 반드시 부활과도 연합합니다.
이것이 부활절의 메시지이고, 바울이 괴로움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근거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가운데 만나는 크고 작은 고난들 역시 이 동일한 원리 위에 서 있습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바울은 28-29절에서 자신의 사역 목표를 밝힙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각 사람'이라는 표현이 28절에 세 번 반복됩니다.
전파하는 대상도 각 사람, 권하는 대상도 각 사람, 가르치는 대상도 각 사람, 그리고 완전한 자로 세우려는 대상도 각 사람입니다.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바울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완전한 자'로 번역된 헬라어 τέλειος(텔레이오스)는 '성숙한, 온전한, 목적에 도달한'이라는 뜻입니다.
도덕적 완벽함이라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야 할 목표에 이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에베소서에서도 같은 목표가 제시됩니다.
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라는 표현은, 성숙의 기준이 우리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분량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성숙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르러 가는' 과정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이 과정에 대한 확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시작하신 이'와 '이루실' 분이 같은 분이십니다.
시작도 하나님이 하셨고, 완성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자로 세워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확신이고,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을까요?
29절을 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은 '힘을 다하여 수고'합니다.
그런데 그 힘의 원천은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 곧 그리스도의 능력을 따라 수고한다고 합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은 흔히 인간적 성취의 문맥에서 인용되지만, 원래 맥락은 바울이 궁핍과 풍부, 배고픔과 배부름 등 모든 형편에서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말하는 자리입니다.
능력의 원천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골로새서 29절의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와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바울은 이 능력 안에서 환난과 곤고와 박해를 이겨냈습니다.
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ὑπερνικῶμεν(휘페르니코멘)은 단순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뜻입니다.
이 압도적 승리의 근거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에게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나누며
골로새서 1장의 이 본문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이 마침내 드러났다는 선언으로 시작하여, 그 비밀이 곧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심을 밝히고, 이 그리스도 안에서 각 사람이 완전한 자로 세워져 간다는 약속으로 마무리됩니다.
부활절을 맞아 이 본문을 다시 읽으며,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이심을 기억합니다.
이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 되시고,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시며, 우리를 온전한 자로 세워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고난이 있고, 지치는 순간이 있고, 아직 완전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이 사랑 안에서, 부활의 소망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한 걸음 더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갑니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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