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QT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김익제 2026. 2. 24. 01:42

누가복음 8:1-8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 씨는 모든 땅에 뿌려집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읽다 보면, 자연스러운 질문이 하나 떠오릅니다. "왜 좋은 땅에만 뿌리지 않는가?" 입니다. 길가, 바위 위, 가시떨기 속에 뿌려진 씨는 결국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효율만 따진다면, 처음부터 좋은 땅에만 뿌리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한 가지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뿌리는 자가 땅의 상태를 미리 알 수 있다는 전제입니다. 성경은 이 전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도 이새의 아들들 앞에서 누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상태, 곧 땅의 상태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길가인지 좋은 땅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자체가 모든 곳에 씨를 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마가복음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모든 사람', '만민에게'라는 범위가 분명합니다. 좋은 땅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땅을 가리지 않는 것은, 비효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땅의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굳은 마음'은 히브리어로 '돌 심장(לֵב הָאֶבֶן, [레브 하에벤])'입니다. 누가복음 8:6의 바위 위 땅과 같은 이미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돌 심장을 '부드러운 마음(לֵב בָּשָׂר, 살 심장, [레브 바싸르])'으로 바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위 땅이었던 사람이 좋은 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도행전 8:1-3에서 바울은 교회를 잔멸하는 자였습니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가장 단단한 바위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신약 서신서의 상당 부분을 기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바울에게는 씨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로마서도, 고린도전후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이 원리를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말씀합니다.

이사야 55:10-11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길가에 떨어져 밟힌 씨가 우리 눈에는 실패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말씀은 보내신 목적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초점은 "어디에 뿌릴 것인가"가 아닙니다. "나는 어떤 땅인가"입니다.

 

2. 좋은 땅은 어떤 모습입니까?

누가복음의 구조를 주의 깊게 보면, 1-3절과 4-8절이 나란히 배치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비유가 "좋은 땅이란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기 전에, 누가는 1-3절에서 그 좋은 땅의 실제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각 성과 마을을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 열두 제자 외에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그리고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다른 여러 여자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나간 자'로 소개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히브리 전통에서 완전수로, 완전히 귀신에 지배당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이 사람을 '좋은 땅'이라고 미리 판단할 수 있었을까요? 에스겔 36:26의 원리가 여기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가장 먼 곳에 있던 사람이 가장 가까이에서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요안나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입니다. 이 소개는 단순한 신상 정보가 아닙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인 자이고(눅 9:9), 후에 예수님의 재판에도 관여하는 인물입니다(눅 23:8-11). 요안나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남편의 고용주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누가복음 8:13에서 예수님께서는 바위 위의 씨를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로 해석하셨습니다. 요안나는 정치적 시험 앞에서도 배반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바위 위 땅이 아니라, 뿌리를 내린 좋은 땅이었습니다.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들은 이름만 언급되거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들의 행위를 분명히 기록합니다.

누가복음 8: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여기서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첫째, '섬기더라'의 헬라어 원어(διηκόνουν, [디에코눈])는 미완료 시제입니다. 이것은 일회적 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섬겼음을 나타냅니다. 한 번의 감동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섬긴 것입니다. 누가복음 8:14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시떨기 속의 씨를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로 해석하셨습니다. 이 여인들은 자기들의 재물을 움켜쥐지 않았습니다. 재물에 기운이 막히지 않고, 오히려 그 소유를 가지고 섬겼습니다.

 

둘째, '자기들의 소유로'라는 표현의 헬라어 원어(ἐκ τῶν ὑπαρχόντων αὐταῖς, [엑 톤 휘파르콘톤 아우타이스])는 '자기에게 속한 것들로부터'라는 뜻입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 자기가 가진 것으로 섬긴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땅의 백 배 결실이 실제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8절의 "백 배의 결실"이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1-3절에서 구체적인 삶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주님을 따르고,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섬기는 것, 이것이 좋은 땅의 열매입니다.

 

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마치시고 외치셨습니다.

누가복음 8: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외치시되'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조용히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외치신 것입니다. 이 선언은 비유의 마무리가 아닙니다. 듣는 자에게 결단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듣다'의 헬라어 원어(ἀκούω, [아쿠오])는 소리를 인지한다는 뜻이 아니라, '듣고 받아들이다', '듣고 순종하다'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야고보서가 이 구분을 분명히 합니다.

야고보서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비유를 들은 사람은 많았습니다. 4절에 '큰 무리'가 모여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큰 무리 가운데서 '들을 귀 있는 자'를 구별하셨습니다. 귀가 있는 것과 '들을 귀'가 있는 것은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좋은 땅은 처음부터 좋은 땅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 있었고,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좋은 땅이 된 것은 자기 안에 좋은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

좋은 땅이 되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외침은, 자기 힘으로 좋은 땅이 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열어놓으라는 초대입니다. 굳은 땅을 부드럽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그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여는 것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응답입니다.

 

다윗의 고백이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시편 139:23-24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다윗은 자기 마음의 상태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살펴달라고 구했습니다. 내 땅이 어떤 상태인지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기에, 그 앞에 마음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묵상을 마치며

누가복음 8:1-3의 여인들은 이름도, 직분도, 지위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일곱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자리에 있던 사람,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말씀을 듣고, 따르고, 자기들의 소유로 섬겼습니다.

 

좋은 땅은 특별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씨를 받아 열매를 맺은 땅이었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주님 앞에 열어 놓는 것이 오늘 이 묵상의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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