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QT

두 빚진 자의 비유

김익제 2026. 2. 22. 01:44

누가복음 7:36-42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옛날 어느 마을에,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빚쟁이 2명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호에게서 돈을 빌렸었는데, 

 

한 명은 50만 원을 갚아야 하고 다른 한 명은 5,000만 원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부자가 그들에게 하는 말이, 

 

"나는 당신들이 나에게 줄 돈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번에 나에게 진 빚을 탕감해 주겠다."였다.

 

대박이 터졌다.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니, 이것만큼 짜릿한 순간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여기서, 두 빚쟁이 중 누가 더 부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을까? 바로 5,000만 원을 빚진 빚쟁이였다. 왜냐하면, 같이 빚 전체를 탕감 받았지만 그 총액이 다른 빚쟁이에 비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누가복음 본문에서 동일한 질문을 비유를 통해 바리새인(시몬)에게 하셨다. 

 

상상해보자. 

 

부드러운 옷을 입으며 깔끔하게 빼입은 바리새인 시몬이 있었다.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 식사 초대를 했고 예수님께서는 그 초대를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 앉아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죄를 지은 여자가 그 집으로 왔다.

 

이 당시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잔칫상 주변에 서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마 눈에 띄어 저녁 식사를 조금이나마 제공 받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단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향유 담은 옥합을 들고 왔다. 

 

그 목적이란, 예수님께 경의를 표하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터뜨리며,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자기의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셨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당시 예의범절에 어긋난 행동이었다. 

 

모두 예수님을 향한, 제약받지 않는 애정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 당시 향유를 담은 옥합은 일반 노동자의 1년 치 연봉과 동일한 가치를 지녔음을 고려해 보면 그 애정이 매우 깊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때 바리새인 시몬은 비판적인 반응을 넘어 혐오적 반응을 보였다. 

 

만약에 예수님이 정말로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 표현되지 않은 반응에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비유에는 위에서 작성했던 예시와 동일하게 빚 주는 사람과 빚진 자 둘이 포함되었다.

 

한 사람은 상당한 금액을 빚졌다. 그 빚을 갚으려면 몇 년이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그보다 덜한 금액을 빚졌다. 그 빚을 갚으려면 몇 주일이 걸렸을 것이다.

 

자비롭게도 빚 주는 사람은 둘 다 탕감해 주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 시다.

 

우리 각자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탕감해주셨다. 

 

그러나 각자의 사랑이 다르다. 

 

그 이유는 각자가 인정한 죄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위의 예시와 오늘의 본문 속 빚진 자들은 각자의 빚이 얼마큼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우리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를 탕감 받았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일단 나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면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이 우리를 누르며 다른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